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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받는 사람은 왜 다른 인정을 구하는가 — 요한복음 1:1–5

    요한복음 1:1–5에는 아직 구체적인 사람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니고데모도 없고, 사마리아 여인도 없으며, 눈먼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도, 거절하는 사람도, 사람들의 평가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아직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문단을 읽으면서 곧바로

    “사람의 인정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

    라고 결론을 내린다면, 본문보다 너무 빨리 앞으로 가는 셈입니다.

    그런데 아주 흥미롭게도 사람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4절에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ἡ ζωὴ ἦν τὸ φῶς τῶν ἀνθρώπων

    헤 조에 엔 토 포스 톤 안트로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여기에서 ἀνθρώπων(안트로폰)은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요한이 처음 사람을 언급하는 방식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훌륭한지도 말하지 않습니다.

    누가 더 높은 사람인지도 말하지 않습니다.

    처음 사람을 말하면서 요한이 보여 주는 것은 이것입니다.

    사람에게 빛이 필요하며, 그 빛은 말씀 안에 있는 생명에서 온다.

    이것이 요한복음에서 사람을 바라보는 첫 자리입니다.


    사람은 자기 빛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을 바라볼 때 여러 가지 빛을 사용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바라봅니다.

    내가 가진 돈과 직업을 바라봅니다.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를 봅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인지, 인정받는 사람인지, 다른 사람보다 앞서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그런 것들이 나 자신을 판단하는 빛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첫 문단은 아직 그 모든 것을 말하기 전에 사람을 전혀 다른 빛 아래 세웁니다.

    그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었다.

    빛의 출처가 사람 자신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서로 만들어 주는 평가도 아닙니다.

    세상의 제도도 아닙니다.

    말씀 안에 있는 생명이 사람들을 비추는 빛입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을 읽으며 앞으로 계속 묻게 될 질문 하나가 여기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나는 누구의 빛으로 나를 보고 있는가?


    다른 사람의 눈은 나를 완전히 비추지 못한다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인정은 중요합니다.

    어린아이는 부모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학생은 선생님의 평가를 기다립니다.

    직장인은 상사의 판단을 의식하고, 사람은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서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이 자체를 악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는 순간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이 나의 존재를 결정하는 마지막 빛이 될 때입니다.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니까 나는 가치 있다.”

    “저 사람이 나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나는 실패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나를 높여 주니까 나는 중요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나를 외면하니까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판단은 우리의 삶에서 쉽게 일어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1–5는 아직 어떤 사람도 평가하지 않은 채 먼저 말합니다.

    사람들의 빛은 생명이라고.

    그 생명은 말씀 안에 있다고.

    그러므로 사람의 가치는 다른 사람이 비추는 조명보다 먼저 존재하는 빛 아래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다른 빛을 찾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3편의 질문을 조심스럽게 꺼낼 수 있습니다.

    “나는 이미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는데 왜 다른 존재의 인정이 필요한가?”

    하지만 1:1–5에는 아직 ‘사랑받는다’는 표현도, 사람이 타인의 인정을 구하는 장면도 직접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문단에서 답을 미리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보다 앞선 토대입니다.

    사람의 생명과 빛의 근원은 사람 밖에 있다.

    그런데 인간은 앞으로 요한복음에서 계속 다른 것을 자기 빛으로 삼으려 합니다.

    출신을 봅니다.

    종교적 지위를 봅니다.

    사람들의 평판을 봅니다.

    회당에서 쫓겨날지를 두려워합니다.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기도 합니다.

    그 모든 장면을 만나기 전에 요한은 독자의 발밑에 하나의 기준을 놓아 둡니다.

    사람을 비추는 참된 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 질문을 잊지 않고 뒤의 이야기들을 읽으면 사람의 인정 문제가 단순한 성격 문제보다 훨씬 깊어집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보다 더 깊은 질문

    우리는 흔히 사람의 인정을 구하는 사람에게 말합니다.

    “남의 눈치를 보지 마.”

    “자신감을 가져.”

    “사람의 평가를 신경 쓰지 마.”

    그러나 요한복음은 아마 더 깊은 곳으로 우리를 데려갈 것입니다.

    문제는 단순히 자신감이 부족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나는 무엇으로 나 자신을 보고 있는가?

    사람들의 평가가 빛이라면 평가가 바뀔 때마다 내 모습도 달라질 것입니다.

    권력이 빛이라면 힘을 잃는 순간 나는 어두워질 것입니다.

    재산이 빛이라면 가진 것이 줄어드는 순간 내 가치도 줄어들 것입니다.

    종교적 지위가 빛이라면 공동체에서 밀려나는 순간 내 존재까지 흔들릴 것입니다.

    요한복음 뒤에서 사람들이 출교를 두려워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질문과 연결해서 볼 수 있습니다.

    ‘회당에서 나가면 나는 누구인가?’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으면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그러나 1장의 첫 문장은 그 모든 질문보다 먼저 우리를 태초로 데려갑니다.

    내가 어떤 공동체에 들어가기 전에도 말씀이 계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기 전에도 생명이 있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이루기 전에도 빛이 있었습니다.


    빛은 사람을 만들어 내는 평가표가 아니다

    여기서 ‘빛’을 단순히 하나님이 사람의 잘못을 찾아내는 탐조등으로만 생각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4절의 문장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빛의 앞에 생명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빛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비추는 빛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살게 하는 생명에서 나오는 빛입니다.

    이 차이는 중요합니다.

    사람의 평가는 때로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이것을 잘해야 가치가 있다.”

    “여기에 들어와야 인정받는다.”

    “이 기준을 통과해야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요한복음의 첫 문단에서는 사람이 어떤 기준을 통과하기 전에 이미 생명이 먼저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예수께서 한 사람을 바라보실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붙여 놓은 이름과 예수께서 보는 사람이 같은가?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예수께서는 어떻게 보시는가?

    사람들이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예수께서는 무엇을 주시는가?

    사람들이 내쫓은 사람을 예수께서는 다시 찾아가시는가?

    이 질문들은 모두 첫 문단의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는 문장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빛을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빛을 받는 존재다

    여기에서 아주 단순한 차이가 생깁니다.

    사람은 빛의 근원이 아닙니다.

    사람은 빛을 받는 존재입니다.

    이 사실은 사람을 작게 만드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반대일 수 있습니다.

    내가 나의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한다면 나는 평생 그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더 잘해야 하고,

    더 높이 올라가야 하고,

    계속 인정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나를 비추는 빛이 내 성취보다 먼저 존재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나는 빛을 만들어 내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비추고 있는 빛 안에서 나를 발견하는 사람이 됩니다.

    요한복음이 앞으로 사람을 그 빛 앞으로 계속 데려올 것입니다.


    다음 문단에서 사람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1:1–5에서는 사람이 아직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문단인 1:6–13으로 넘어가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세례 요한이 증언하러 옵니다.

    참빛이 세상에 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영접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받아들입니다.

    그러므로 1:1–5는 사람의 반응을 분석하기 전에 기준이 되는 빛을 먼저 세우는 문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빛이 무엇인지 알아야 사람이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거절하는지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다른 사람의 인정을 구하는 인간을 너무 빨리 비판하지 않아도 됩니다.

    먼저 그 사람 앞에 무엇이 비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생명에서 나온 빛입니다.


    나는 누구의 빛 아래 서 있는가

    우리는 매일 많은 사람의 눈 안에서 살아갑니다.

    칭찬받으면 기쁘고,

    무시당하면 아픕니다.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습니다.

    요한복음은 앞으로 그런 사람을 꾸짖기 전에 여러 번 찾아오시는 예수를 보여 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첫 문단은 아주 조용한 기준 하나를 세웁니다.

    사람들의 빛은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말씀 안에 있는 생명에서 옵니다.

    그렇다면 내가 나 자신을 바라볼 때 가장 먼저 비추어야 할 빛은 무엇일까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일까요?

    내가 얼마나 성공했는가일까요?

    사람들 가운데 어느 자리에 서 있는가일까요?

    아니면 나보다 먼저 존재했고, 내 생명보다 먼저 있었으며, 지금도 어둠 가운데 비추고 있는 그 생명일까요?

    요한복음의 사람들은 이제부터 하나씩 이 빛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들과 함께 질문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사람들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나라고 믿고 있는가, 아니면 생명의 빛이 비추어 주는 나를 알아가기 시작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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