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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편. 예수께 머문 사람은 어디에서 자신을 확인하는가

    사랑받는 사람은 왜 다른 인정을 구하는가 — 요한복음 1:35–42

    두 제자가 예수를 따라갔습니다.

    예수께서는 돌아보시며 물으셨습니다.

    “무엇을 구하느냐?”

    그들은 대답했습니다.

    “랍비여, 어디에 머무십니까?”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와서 보라.”

    그들은 갔습니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예수와 함께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그 만남은 두 사람 안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안드레는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그는 시몬을 예수께 데려옵니다.

    바로 그때 아주 중요한 장면이 일어납니다.

    예수께서 시몬을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아직 그가 살아 보지도 않은 새로운 이름을 말씀하십니다.

    “너는 게바라 불릴 것이다.”


    이 문단에는 아직 인정 경쟁이 직접 나오지 않는다

    먼저 우리의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요한복음 1:35–42에는

    사람의 칭찬을 구하는 장면이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의 영광과 하나님의 영광을 비교하는 말도 아직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문단에서 곧바로

    “사람의 인정을 구하지 말라.”

    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너무 빠릅니다.

    하지만 사람의 정체성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아주 중요한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시몬에게 새로운 이름이 주어지는 장면입니다.


    안드레는 자기가 만난 분을 형제에게 전한다

    안드레는 예수와 함께 머문 뒤 자기 형제 시몬을 찾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Εὑρήκαμεν τὸν Μεσσίαν

    휴레카멘 톤 메시안.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안드레에게서 눈에 띄는 것은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내가 좋은 스승을 찾았다.”

    “내가 특별한 경험을 했다.”

    “내가 이제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말하는 중심은 자기 자신이 아닙니다.

    메시아입니다.

    예수와 함께 머문 사람의 시선이 자기에게서 예수께로 이동한 것입니다.


    만남은 사람을 자기 자랑으로 보내지 않는다

    사람은 특별한 경험을 하면 그것을 자기 가치로 바꾸기 쉽습니다.

    어디를 다녀왔는가.

    누구를 만났는가.

    무엇을 배웠는가.

    어떤 경험을 했는가.

    그것들이 어느 순간

    “나는 이런 사람이다.”

    라는 자기 증명의 재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의 행동은 조금 다릅니다.

    그는 자신이 예수를 만났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자신을 높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형제를 예수께 데려옵니다.

    예수를 만난 경험이 사람을 자기에게 묶어 두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예수께 보내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예수께서 시몬을 바라보신다

    42절에는 중요한 동사가 나옵니다.

    ἐμβλέψας αὐτῷ ὁ Ἰησοῦς

    엠블렙사스 아우토 호 이에수스.

    “예수께서 그를 눈여겨보시고.”

    ἐμβλέπω(엠블레포)는 바라보다, 주의 깊게 보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시몬이 예수 앞에 서자 먼저 예수께서 그를 바라보십니다.

    이 장면을 천천히 생각해 보면 중요합니다.

    시몬이 먼저 자기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자기 경력을 말하지도 않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증명하지도 않습니다.

    예수께서 먼저 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예수께서는 지금의 그가 누구인지 아십니다.


    현재의 이름을 아시면서 새로운 이름을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시몬의 현재 이름을 지우지 않습니다.

    “너는 시몬이다.”

    현재를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σὺ κληθήσῃ Κηφᾶς

    쉬 클레테세 케파스.

    “너는 게바라 불릴 것이다.”

    κληθήσῃ(클레테세)는 ‘불리게 될 것이다’라는 미래 표현입니다.

    현재의 시몬과 미래의 게바가 한 문장 안에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지금의 사람을 보시면서도 지금의 모습만으로 그 사람을 끝내지 않으십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이름을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현재의 모습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한다

    사람은 보이는 것을 가지고 판단합니다.

    지금 저 사람이 어떤가.

    무엇을 잘하는가.

    무엇을 실패했는가.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가.

    이런 것들이 사람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자료가 최종 판결이 될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은 원래 그래.”

    “저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아.”

    “예전에도 실패했으니 앞으로도 똑같을 거야.”

    사람의 평가는 쉽게 사람을 현재와 과거 안에 가둡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시몬을 보시며 다른 방식으로 말씀하십니다.

    현재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미래를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아직 베드로답지 않은 사람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말씀하신다

    이 장면이 더 놀라운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뒤의 이야기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몬은 앞으로 크게 흔들립니다.

    자신 있게 말하다가 실패합니다.

    예수께서 잡히실 때 두려워합니다.

    결국 예수를 세 번 부인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

    첫 만남에서 이미 새로운 이름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시몬이 이미 완성된 사람이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아직 이루어질 일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예수께서는 현재의 미완성만으로 사람을 규정하지 않으십니다.


    나는 누구의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가

    여기서 우리의 세 번째 질문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나는 누구의 말로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있는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

    가족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직장에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공동체에서 내 위치가 어디인가.

    이런 것들은 현실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나의 존재를 결정하는 마지막 말이 될 수 있을까요?

    시몬에게 마지막 말을 하신 분은 주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불릴 이름을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평가는 지금을 보고, 예수의 말씀은 이루실 것을 본다

    사람의 평가는 흔히 이미 나타난 결과를 보고 이루어집니다.

    잘했으니 인정합니다.

    성공했으니 높입니다.

    실패했으니 낮게 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시몬에게 주신 이름은 아직 시몬이 무엇인가를 증명하기 전에 주어집니다.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사람의 인정은 흔히

    “네가 이것을 이루었으니 내가 인정하겠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은 먼저 다가옵니다.

    “너는 이렇게 불릴 것이다.”

    사람이 앞으로 걸어갈 길보다 말씀이 먼저 놓입니다.


    그렇다고 사람의 평가를 모두 무시하라는 뜻은 아니다

    여기에서도 극단으로 갈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의 조언은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의 잘못을 알려 줄 수도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 평가하고 책임지는 일도 중요합니다.

    예수께서 새 이름을 주셨다는 사실을

    “이제 누구의 말도 들을 필요가 없다”

    는 뜻으로 바꾸면 본문에서 벗어납니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 기준입니다.

    사람의 평가는 나를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평판이 하나님께서 나를 다루시는 가능성을 닫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왜 사람의 인정이 그렇게 중요한가

    사람은 자신의 미래를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지금 잘하고 있는지도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반응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 합니다.

    “내가 괜찮은 사람인가?”

    “내가 잘하고 있는가?”

    “내가 가치 있는가?”

    사람들의 눈에서 그 대답을 얻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반응은 계속 변합니다.

    오늘 칭찬하던 사람이 내일 비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인정받던 자리가 내일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말만으로 자신을 세우면 마음도 함께 흔들립니다.


    예수와 머무는 사람에게 다른 기준이 생긴다

    이 문단에서 중요한 것은 이름만이 아닙니다.

    그 이름 앞에 머묾이 있었습니다.

    두 제자가 예수와 함께 머뭅니다.

    안드레는 그 만남을 통해 메시아를 알아봅니다.

    그리고 시몬을 예수께 데려옵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정체성은 멀리서 받은 정보가 아니라 예수와의 관계 안에서 시작됩니다.

    사람의 인정에서 자유로워지는 길도 단순히

    “남의 말을 신경 쓰지 마.”

    라고 자신에게 명령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보다 먼저

    누구와 머물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예수께 머물면 나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수 있다

    예수와 함께 머문다고 해서 모든 불안이 즉시 사라진다고 본문이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방향은 달라집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부르는가만 바라보던 사람이,

    예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를 묻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내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는가보다,

    예수께서 내 안에서 무엇을 이루고 계시는가를 바라보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때 사람의 인정은 여전히 기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내 존재를 만들어 주는 유일한 빛은 아닙니다.


    안드레도 시몬의 미래를 정하지 않았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이 있습니다.

    안드레는 시몬을 예수께 데려왔지만,

    시몬의 미래를 자기가 결정하지 않습니다.

    “너는 앞으로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를 예수께 데려갑니다.

    그리고 시몬에게 새로운 이름을 말씀하시는 분은 예수입니다.

    이것이 관계에서도 중요한 차이를 만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미래까지 대신 결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그 사람을 예수께 데려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무엇을 이루실지는 예수께 맡겨야 합니다.


    사랑받는 사람은 자기 이름을 계속 만들어 낼 필요가 없다

    지금까지 요한복음 1장을 따라오면서 한 가지 흐름이 반복됩니다.

    사람보다 먼저 생명이 있었습니다.

    빛이 먼저 비추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말씀이 사람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요한을 보내셨습니다.

    어린양을 보내셨습니다.

    성령이 내려와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이제 시몬에게 새로운 이름이 말씀됩니다.

    계속 하나님이 먼저 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든 것을 자기 힘으로 만들어 내야만 하는 존재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정체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사람들의 평가를 모아 나라는 사람을 처음부터 만들어 내야 하는 존재만은 아닙니다.

    예수께서 나를 바라보시는 자리에서 내가 누구인지 배워 갈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누구의 말을 마지막 말로 듣고 있는가

    우리에게도 수많은 이름이 붙습니다.

    잘하는 사람.

    실패한 사람.

    성공한 사람.

    평범한 사람.

    필요한 사람.

    쓸모없는 사람.

    좋은 사람.

    문제 있는 사람.

    사람들의 말은 때로 정확하고 때로 틀립니다.

    하지만 어느 것도 나에 대한 마지막 말이 될 수는 없습니다.

    시몬의 이야기가 보여 주는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현재의 이름을 알고 계시면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까지 바라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사람들의 평가를 모아 내가 누구인지를 결정하고 있는가, 아니면 예수와 함께 머물며 나를 눈여겨보시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나의 삶까지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을 더 깊이 듣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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